지역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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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와 지형


고한읍은 정선군 남동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52.34㎢로 정선군 9개 읍면 가운데 사북읍에 이어 두 번째로 작다. 총면적의 85% 이상이 700m 이상인 전형적인 산간지역으로 가용면적이 매우 적다. 그래서 “앞산과 뒷산에 줄을 걸어 빨래를 널 정도”라는 비유가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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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와 정암사


고한읍이라는 정식 행정명이 사용된 것은 1985년부터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고한읍은 국보 제332호로 지정된 수마노탑이 소재한 정암사의 역사, 즉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암사는 신라시대 고승인 자장율사가 서기643년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한 후 건립한 사찰로써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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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이 살던 마을


정암사의 창건과 함께 14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왔지만, 1950년대 초까지는 780여 가구의 화전민이 밭농사와 임산물 채취를 주로 하며 살던 한적한 산촌이었다. 1962년 석탄개발임시조치법 시행과 함께 삼척탄좌, 동원탄좌와 같은 대형 탄광회사가 등장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탄광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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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개발과 도시의 형성


탄광개발로 도시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되자 1973년 대통령령 제6543호로 동면 사북출장소가 사북읍으로 승격되면서 고한리는 사북읍의 관할 행정구역으로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계속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 팽창으로 행정수요가 급증하가 되자 1985년 10월 고한읍으로 분할하여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었다.
고한읍이 사북읍에서 분할된 1985년 당시 고한읍의 인구는 32,801명으로, 사북읍 23,162명을 합하여 12,700여 세대, 인구 55,963명이라는 거대한 탄광마을로 위세를 떨쳤다. 같은 시기 속초 인구가 7만여 명이었으니 얼마나 급속하게 성장하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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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정책과 인구감소


그러나 1985년 읍으로 승격된 고한읍은 불과 5년 뒤인 1990년부터 급격한 위기를 겪게 된다.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합리화사업으로 고한지역의 중추적인 경제기반이었던 탄광들이 잇따라 폐광되면서 1990년 2만 명 선을 가까스로 유지했고, 1995년에는 9,846명, 2002년에는 6천명 이하로 급감하였다. 한때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등 20여개 광업소에서 전국 생산량의 15%의 무연탄을 생산하였으나 2001년 10월 삼척탄좌의 폐광으로 모든 탄광이 문을 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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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설립과 지역개발


정부가 시행한 급속한 폐광정책은 실직으로 인한 인구감소, 빈집증가, 경제적 공황상태 등 지역사회에 엄청난 부작용을 남겼다. 이에 따라 1993년부터 주민들은 대체산업 육성 등을 요구하며 정부와 정면충돌하였고, 결국 1995년 3월 3일 주민과 정부 사이 폐광지역 회생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31일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고, 1998년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공기업인 강원랜드가 설립되었다.
강원랜드는 2000년 10월 고한 박심지구에 스몰카지노 개장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0여년동안 수조원의 막대한 투입해 스키장, 워터파크, 특급호텔, 콘도미니움 등의 종합적인 위락시설을 갖춘 리조트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